생존권-노동권 | |||||
작성자 | 오** | 작성일 | 2009-05-22 | 조회수 | 1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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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좋은 글이 실렸습니다.
내겐 아직 슬퍼할 힘이 남았어 / 김현진 야!한국사회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제1지회장이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 살과 일곱 살 아이의 아빠, 안타깝게 그를 기다리는 아내를 남겨둔 채였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 한창 일할 나이였다. 그러나 건당 30원을 인상해 달라는 요구가 대한통운 쪽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받은 뒤 3월부터 복직투쟁을 했으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투쟁은 장기화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대단한 것이 바뀌지 않을 것을 그는 알고 있다고 유서에 썼다. 숨지기 전 그가 쓴 그 글에는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제물을 원한다는 등 살벌하면서도 준엄한 구절이 날이 시퍼렜다. 그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 한다고 유서에 썼다. 그 강요당한 죽음으로 용산에서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 이 아버지들이 죽어갔고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 간의 싸움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가난한 아빠들이 스러졌다. 가난한 아빠들은 자꾸 지고 죽기만 한다. 이 지옥도 같은 모든 광경에서 제일 무서운 게, 제일 끔찍한 게 무관심이다. 무기력이다. 무감각이다.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 … 이 이름들 뒤에 화물연대 박종태 지회장이 더해지지만 고분고분히 뭐든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은 무감각해져 간다. 아이쿠 또 누가 죽었구나 여기 열사 하나 추가요, 하는 식의 이 끔찍한 무관심. 박종태 지회장은 유서에 썼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거라고. 끝까지 어떻게 승리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억울하다고. 그것만이 그가 놓친 억울한 광경일 리 없다. 그야말로 눈동자처럼 사랑했을 아들딸들이 어떻게 자라 가는지 그것도 그는 다시 볼 수 없다. 고인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피맺힌 슬픔이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견디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날이 될 때까지,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겠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견뎌야만 하는가. 언제까지 참아야만 하는가. 피맺히도록, 죽도록 참고 또 참아야 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서러운 죽음 앞에 죽을 힘을 다해 살아 보라는 충고는 아무런 힘이 없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보아도 찾아온 건 용산에도, 대전의 야산에도 결국 죽음이었다. 가슴에 피가 맺히도록 슬픔이 가득 차고, 이 서러운 슬픔이 가슴을 후벼파도록 왜 이렇게 견뎌야만 하는가, 눈을 떠도 도무지 깜깜하다. 이 광경들이 깜깜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는 중얼거린다. 모든 게 끝장나도, 내겐 아직 죽을힘이 남았어. 길고 격렬한 싸움에 지친 박종태 지회장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그 힘은, 아마도 죽을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을힘을 다해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쉽게 말하겠지만 그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힘은 그야말로 죽을힘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슬퍼할 힘뿐이다. 슬퍼하지도 못하면 이놈의 세상에 완전히 먹힌다. 정말로 끝이다. 박종태 지회장 유가족 후원 계좌는 기존 운수노조 계좌로 통합되었다. 그 죽음에 슬퍼하고, 내 구차한 삶 유지하느라 푼돈 입금할 힘밖에 없어도 그래도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정말로 깜깜할 것 같으니 뭐라도 하자, 제발 슬퍼하자, 제발 제발. 김현진/에세이스트
기사등록 : 2009-05-18 오후 09: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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